Life of Desire weekly magazine vol.19
사소한 욕망, 능동적 실행
As the mind leads 마음이 이끄는 대로
국립한글박물관: 사전의 재발견, 명필을 꿈꾸다
National Hangeul Museum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옆 쪽에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만큼 한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은 항상 영어가 가장 아름답게 조합된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한글은 그저 조금 촌스러운, 혹은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인 문자(文字)라고 하니 별 다른 생각없이 받아들였다. 그 후 어느 날인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오른쪽 편으로 한글박물관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본 뒤로 호기심이 생기고 2018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2월 드디어 첫 방문을 하게 된다. 방문 후 검색해보니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개관, 이제 5년차에 접어든 곳이니 생소할 수밖에(?). 사실 한동안 전시관람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것 뿐.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쉽다. 이촌역 2번 출구 국립중앙박물관 방면으로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선 후 직진하면 국립중앙박물관, 우회전 후 직진하면 국립한글박물관이 나온다. 한글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개의 높은 기둥들이 정렬해 있는데 기둥을 따라 걷다보면 마치 기와지붕 처마 끝이 들려올라간 듯 한 모양의 현대적 건물이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찾아가는 길 방향에서는 그 위용이 덜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후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 진다. 현재 기획전시 및 상설전시로 ‘명필을 꿈꾸다’ ‘사전의 재발견’이 진행 중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입구에 들어서 바로 보이는 전시관은 상설전시실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때부터 다양한 디자인의 폰트 개발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글이 걸어온 발자취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보여준다. 훈민정음 창제와 그 이후 조선시대에서 한글이 일상에서 우리의 언어로 자리 잡아 나가는 모습, 이후 근대 기술과 접목하여 대량 인쇄시기를 맞이해 신문, 잡지 등 다채로운 컨텐츠들을 통해 접하게 되고, 타자기, 컴퓨터를 거치며 한글이 기계화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시기에 따라 컨셉이 명확해 전시기획구성의 관점이나 건축디자인의 미학적 관점에서 둘러봐도 좋은 곳이다. 다양한 폰트로 쓰여진 출구를 나서면 정규교육을 받은 한국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윤동주의 ‘산에는 꽃이 피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예술품으로 조각된 것을 볼 수 있다. 3층에서 기획, 상설전시를 보고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놓인 시조각상은 어쩌면 흔한 예술적 표현일지 모르지만 마주하는 그 순간만큼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상설전시실 바로 위 3층에서 진행 중인 명필을 꿈꾸다와 사전의 재발견.‘명필을 꿈꾸다’(2019.1.20.일까지 진행)는 명필이 되기 위한 서예가들의 필사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보통 그림을 시작할 때 유명작품을 모작하며 연습을 하는 것처럼 서예가들도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왕희지나 종요의 작품을 따라 쓰며 서풍을 익히고 자신만의 필체를 만들어나간다. 서예가 단지 멋 드러진 글씨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가의 작품임을 느낀다. 미술이나 디자인 등 광범위한 예술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모든 행위들이 타인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독특한 나만의 창조적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만을 살펴본다면 이것은 비단 예술영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학습하고 나를 찾는 모든 것들이 같은 맥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들은 시대별 필사본 모작 외에도 근대에 이르러 한문이 아닌 한글을 따라 쓰는 교과서 교본으로 이어져 오는 과정을 보여주고, 교육을 통한 ‘따라쓰기’라는 행위자체가 모든 사람이 명필을 꿈꿀 수 있도록 돕는 현대의 시도임을 느끼게 한다.
명필을 꿈꾸다 전시실 오른편에서 전시중인 ‘사전의 재발견’(2019.3.3일까지 진행)은 요즈음은 보기 드물어진 두툼한 종이사전의 역사적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문화로 함께 발전해 나가는 사전을 재정의한다. 입구부터 취향저격, 사전을 펼친 듯 반듯하게 정돈된 모습은 사전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들어서자마자 ‘사전,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입니까? What meaning do dictionary have in your life?'라는 물음과 함께 한 켠에서 학자나 다양한 사회적 인사들이 자신만의 정의를 설명한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사전은 그저 글자를 차례대로 정리한 묶음이 아닌 우리의 시대와 사회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하나의 역사이자 문화라고 말한다. 이 물음을 안은 채로 1부 우리말 사전의 탄생, 역사부터 한 걸음씩 옮기다보면 한글의 문화적 정체성이 생성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19세기 후반 외국 선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한글의 정리, 사전으로써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후 50여년이 지난 1938년에 이르러서야 첫 우리말 사전인 ’조선어사전‘이 편찬된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중화사상에 물든 유교와 성리학을 공부하는 양반과 유생들에게 최고의 문자는 한문이었고, 보잘 것 없는 글자로 치부되던 한글이 설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외국인 선교사가 자국의 언어와 한글 낱말을 정리해 사전을 편찬했다는 것은 선교사들이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언어가 체계화된 사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음성으로만 통용되는 언어를 문자로 시각화해 학습하기 쉽고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교육의 평등을 일깨워 주는 도구가 되었던 한글은 사전으로 정리·편찬되며 진정한 나라의 언어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보살피는 군주의 마음으로 편찬한 궁극적 목적이 500여 년 이 지나서야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부 우리말 사전의 비밀은 조선어사전이 이후로 큰사전(1957), 표준국어대사전(1999), 한국어대사전(2009)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사전에 실린 단어의 뜻이 그 시대의 일상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 정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단어들이 시대마다 추가되고, 당시에는 차별적 시선이 담겨있던 단어의 정의가 현재는 새롭게 재정의해 평등한 관점에서 기술한다. 이 외에도 각 지역의 사투리, 흔히 사용하는 외래어, 속담을 표현하는 말의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사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시대상들은 사전이 지식의 전달처이자 길잡이를 넘어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유기적 존재의 증명이다. 학창시절 단어는 으레 사전으로만 찾았었는데, 지금은 간단하게 검색하면 포털사이트 내 정리된 온라인사전에서 쉽게 찾아 적용한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낱말의 자음, 모음 순서에 따라 색인을 찾고 뜻을 곱씹어 보던 아날로그한 감성이 갑자기 그립다.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낯설어진 순간, 변화를 맞이하며 혼란했던 상태가 안정기에 들어 자리 잡았다는 것, 지금 꺼내어 다시 익숙해진 이 순간을 흔들어 놓아야겠다.
★ 국립한글박물관의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이용시간은 평일(월~금), 일요일 및 공휴일 10:00~18:00, 토요일 10:00~21:00, 문화가 있는 수요일(매달 마지막 수요일) 10:00~21:00
★ 현재 전시는 무료, 유료 전시일 경우 별도 공지
★ 호응도가 높은 인기전시의 경우 전시종료일이 연장될 수 있으니 다시 한번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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